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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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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거리
2009/11/06 22:17:41

우중충한 주황색과 갈색이 메인 컬리인 듯한 건물들이 모여 있다. 도로변에는 가장 최근에 지어진 고층 건물이 있다. 건물의 중앙 회전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몸에는 조금 큰 듯한 군청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다. 뒤에서 보면 필시 머리를 기른 남자아이로 오해받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뻗친 숏컷을 적당히 털어내고는 가슴에 안고 있던 보자기를 풀었다. 보자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방울이 매달린 얇은 나무채와 금속 고리와 형형색색의 천이 함께 매달려 있는 네모난 단봉이었다. 지나가던 대학생들이 신기한 누초리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트레이닝 복의 양쪽 바지 주머니에 방울채와 단봉을 꽂아 넣고는 보자기를 펼쳐 망토처럼 등에 둘렀다.

"아무도 없어야 하는 것이 응당 올바른 곳. 그 곳으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리라 믿습니다."

소녀는 고개를 숙인채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거린 후 절도 있는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방울채와 단봉을 꺼내들었다.

- 딸랑-찰랑 -

소녀는 방울채와 단봉을 내리고 회전문으로 걸어들어 갔다.

"천지신명 정류정령."

소녀는 문을 통과하면서 또 한번 중얼거렸다. 소녀는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아무도 소녀에게 주위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소녀는 조심 조심 사람들을 피하면서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간 소녀는 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에서 전자음이 들리기 시작 했다. 소녀는 조금 날카로운 눈으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 삑
하나 둘 셋.
- 삑
하나 둘 셋.
- 삑
하나 둘 셋.
- 삑
하나 둘 셋.
- 삑
하나 둘 셋.
- 삑
하나 둘 셋.

여섯번의 전자음이 일정간격으로 들린 후에 아무도 잡지 않은 손잡이가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녀가 왼손에 들고 있던 방울채를 흔들었다.

- 딸랑 -
"돌아갈 길을 잃고 해매고 있습니다."

이어서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봉으로 흔들었다.

- 찰랑 -
"아무도 없는 거리를 위해서."

- 딸랑 -
"아무도 모르는 거리를 아는 자 없도록."

- 찰랑 -
"길을 인도할 수 있도록."

소녀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단봉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단봉을 중심으로 불투명한 안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문의 손잡이는 모두 돌아가고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사무실 안에서 전자음을 들으며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은 문이 열림과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패닉에 빠졌다.

일주일전부터 이래왔다. 사무실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느릿느릿하게 비밀번호가 눌리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 건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강의동의 2층 강의실에서도 매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아주 작은 괴담-그저 바람이 불었거나. 환청이라거나.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치부해 버릴 수 있는-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 일의 시작에는 한 연구원의 화장이 있었다. 과중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자신의 컴퓨터에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이상한 점은 유서를 작성한 날짜가 사망 23일 전 이라는 것과 목격자가 있다는 것. 어쨌든 사건은 자살로 마무리 되었다. 그 이후로 그 연구원이 속한 사무실과 수업을 듣던 강의동에 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사무실안에 있는 사람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열린 문으로 사람형태를 이룬 뿌연 안개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개는 더 이상 둘어오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듯 했다.

"돌아가. 얽매일 필요 없잖아."

소녀가 짧게 말했다.

- 딸랑 -

안개가 더욱 선명해진다.

- 찰랑 -

안개의 외각이 매끄러워 지면서 형태가 잡힌다.

- 딸랑 -

인간. 사람형태라는 애매모호한 단어가 아닌 완벽한 인간이다. 다만 흰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몸과 배에 뚫린 구멍, 칠흙같은 어둠이 깔린 얼굴이 이것이 인간이 아니라 아까의 안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찰랑 -

안개인간의 고개가 느리게 돌아가고 사무실의 사람들을 향했다.

- 챙 -

"이 세상으로."

소녀가 두손을 모아 채와 막대기에서 울리는 소리를 멈추게 하게 인간 안개가 굳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안개 인간의 몸에서 스물스물 피어나던 희미하게 옅은 안개가 모두 공기중에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시간이 멈춰진 것 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 기이이이아아아아아아아악!!! -

기묘한 울림이었다. 그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귀를 막아도 변함없이 뇌를 울리는 소리었다. 하지만 근방 사무실에 있는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마치 사무실을 꽉 매우고 있는 공기 같은 울림이었다. 당사자들 후에 이명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회상한다.

- 딸랑 -

인간 안개에서 다시 스멀스멀 안개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 찰랑 -

순간 사무실 내에 사람들이 힘이 빠진 듯 풀썩 주저 앉았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여성만이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 챙 -

"다음을 기약해. 이제 돌아가."

안개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안개인간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안개의 양이 점점 많아지면서 형태가 사라져간다. 안개가 모두 사라지자 뒤늦게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만 서 있던 여성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문밖에 서있던 소녀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전과 다르게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엎드린 여성의 앞에 도착했다.

- 딸랑 -

여자가 흠칫하면서 방울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 찰랑 -

탁한 일색의 눈동자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당신 덕분에 늘어난 수명이었어."

여자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당신까지 얽매일 필요는 없어."

- 챙 -

여자는 온 몸에 힘이 빠진 듯 무너져 내렸다. 소녀는 쓰러진 그녀를 뒤로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목에 두른 보자기를 풀어 방울채와 단봉을 싸고 두팔로 가슴에 안았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가는 동안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밖으로 나온 소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걷기 시작했다.

"찾았다. 소문이 아니었군. 무당 로인"

소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건물 안에서 바라보는 남자가 말했다. 남자는 검은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 먹은 과일쥬스 팩의 빨대를 씹으면서 중얼 거렸다.

"신들린 무당인가. 여태까지 보아온 신내린 무당과는 격이 다르구만. 제법 귀여운 얼굴이던데 왜 저러고 다니는 거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쥬스 팩을 버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무당 집에서 태어난 것 같지는 않고... 버림받은 건가."

소녀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은 채 뒤쫓는 남자는 계속해서 중얼 거렸다.

"거리의 열쇠는 찾았다. 나는 칼, 남은건 방패인가."

소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변함없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길가의 분식 포장마차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남자는 소녀의 옆으로 걸어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면서 말했다.

"어묵 2개요."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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