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아...
창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눈을 떴을 때 화창했던 날씨는 사라지고 이제는 새차게 내리는 빗줄기밖에 보이지 않는다. 멍하니 창밖을 보던 나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방이 흰 벽지로 발라진 세평 남짓한 방과 그 방의 가운데에 놓여진 침대.
그 침대에는 그를 대신할 물건이 누워서 잠을 자고 있다.
그 물건은 일어나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잠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 물건이 걸어나오길 기다리던 나는 참지 못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물건은 창문 밖에 내리고 있는 빗방울을 눈으로 쫒고 있었다. 그 사람도 비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사람과 저 물건이 느끼는 감정은 근본부터가 다르겠지.
"-일어났네."
나는 그 물건이 나를 눈치채주길 바랬지만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 물건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인간과 다를바 없는 그 눈속의 눈동자가 부자연스럽게 나의 몸 곳곳을 체크하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동자 움직임에 조금 불쾌해졌다.
"일어났으면 나한테 제깍 달려와서 신고를 했어야지. 기본이 안 되어있는 모델이네." "아, 죄송합니다. 저 이름이......" "수아. 주인의 이름정도는 입력해뒀다고 생각했는데, 없나보군. 됐어. 밥이나 하도록 해." "...당신이 저의 주인님이십니까?" 최악이다. 조금씩 불쾌해 지던 나의 기분은 단박에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렇다고 성질 내봐야 내가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
"당연한 것을."
그 물건은 다시 한번 내 몸 이곳 저곳을 꼼꼼히 체크 한 후 나의 말을 기다리는 듯이 서있었다.
"산이, 산이라고 부르겠어. 그리고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보군. 밥을 하라고 했잖아." "아, 네.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 물건은 당황한 듯이 주위를 살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이직 셋팅으로 구입하는게 아니였는데.
"주방은 나가서 왼쪽에 있어." "네. 무엇이 드시고 싶으세요?" 바닥까지 떨어졌던 나의 기분은 그 물건의 한마디에 조금 추스려졌다. 그가 돌아온 것도 아닌데.
"아무거나."
나는 그에게도 항상 '아무거나.'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는 정말로 아무 음식이나 만들어왔다. 나의 취향도 자신의 취향도 상관하지 않은채 달력으로 재료를 정하고 시간으로 레시피를 결정하곤 했다.
2074 년.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두 손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인간과 같은 외모를 지녔고, 그것을 뛰어넘어 말하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드디어 실현되어 시판되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물건이 그 꿈의 결정체이다. 그리고 현재인 2084년.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기계가 그렇듯이 로봇 역시 점점 인간답게 바뀌어 갔다. 외모는 점점 인간과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오감을 재현하는데 성공했고 감정을 흉내내는 것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물건은 자기학습능력이 더해진 최신예 모델이었다.
"달아." "...네?" "이거, 달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말아. 나한테 먹는 건 일상이니까." "그럼 그 달다는 게 무슨 맛인가요?"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져온다.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미각 하드웨어를 추가하지 않았을까? 모양은 그와 똑같도록 주문을 하고도 알맹이까지 비슷한 건 참을 수 없었던 걸까?
"내가 아무리 달다 라는 말을 표현해봤자 궁금증만 더 커질뿐이야. 넌 로봇이야. 알아봤자 쓸모없는 지식은 필요없잖아?"
그렇다. 저건 단지 로봇으로 분류된 물건일 뿐이다. 그가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알고 싶은게 아니다. 알아야할 필요성이 있을 뿐이다. 자기학습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로봇에게 불필요한 지식은 없다.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 자체가 로봇에게 필요한 지식인 것이다. 귀찮아질 내용은 사전에 커트하는 것. 그것이 베이직 셋팅의 로봇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맛있으신가요?” “응.”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지금 로봇의 머리속에서는 어떠한 데이터 처리가 일어나고 있을까? 수십,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가지의 상황예측을 통해 도달한 결론이 고작 매너용 멘트인 것이 로봇답다. 다시 만들어도 똑같은 음식밖에 못만드는 주제에.
그 물건이 만들어준못먹을정도는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없다는 걸 마음속에 각인시킬 수 있을테니까.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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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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